이순신을 ‘오랑캐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순신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이자 구국의 영웅이다. 반면 우리가 역사에서 알고 있는 오랑캐는 중화 문명의 바깥에 있던 변방의 사람들을 낮춰 부르던 말이었다.
특히 오랑캐연구소가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기존 질서에 도전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창업자이자 정복자였다.
그렇다면 조선을 지킨 이순신과 새로운 제국을 건설한 누르하치·홍타이지를 어떻게 같은 ‘오랑캐 리더’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가 말하는 오랑캐 리더가 누구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오랑캐연구소가 말하는 오랑캐 리더는 특정 민족이나 혈통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정복자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랑캐 리더란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부족한 자원을 스스로 만들어 조직하며, 자신에게 없는 것은 외부에서 받아들이고 명분보다 실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판을 만들어내는 리더다.
그러한 리더십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오랑캐 정신이 오랑캐연구소가 제안하는 ‘야생성, 규율성, 개방성, 실용성, 전략성’이다. 이 정의를 기준으로 이순신을 다시 바라보면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이순신은 역사적 의미에서 오랑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위기를 돌파한 방식은 오랑캐 리더십의 전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순신과 오랑캐 리더가 만나는 지점은 ‘결핍’이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그리고 이순신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기존 질서에 도전해 새로운 국가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반면 이순신은 기존 국가인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들의 리더십이 출발한 조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결핍이다.
오랑캐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출발한다. 사람도 부족하고 자원도 부족하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와 경쟁해야 하고, 외부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순신의 상황도 이와 닮아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그는 군량과 군수물자를 마련하고, 군사와 피난민을 먹이며, 함선과 무기를 유지하고, 동시에 일본군과 싸워야 했다.
이 상황에서 이순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족한 지원과 불리한 환경을 실패의 이유로 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어진 조건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순신은 후자를 선택했다. 필요한 자원이 없다면 확보했고, 부족한 생산 기반은 만들어냈으며, 흩어진 사람들을 조직했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장한식 저자의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가 주목하는 이순신의 진면목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단순히 주어진 자원을 잘 사용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전쟁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조건 자체를 만들어낸 리더였다. 이 지점에서 이순신과 오랑캐 정신이 만난다.
야생성 -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생존의 길을 만들어내다
오랑캐 정신의 출발점은 야생성이다. 야생성이란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환경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는 힘이다.
오랑캐 리더는 조건이 나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패의 핑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이 조건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순신 역시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는 중앙의 지원만 기다리지 않았다. 바다와 섬, 연안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식량과 물자를 확보할 방법을 찾고,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것이 이순신에게서 발견되는 야생성이다. 무모하게 적에게 돌진하는 용기가 아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생존 가능성을 찾아내는 힘. 야생성이란 바로 그런 생명력이다.
규율성 - 생존의 힘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다
그러나 살아남겠다는 의지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흩어진 사람과 자원을 하나의 목적 아래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야생성 다음에 필요한 정신이 규율성이다.
누르하치가 팔기제를 통해 흩어진 여진 부족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었다면, 이순신 역시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군사와 생산, 행정이 움직일 수 있는 질서를 만들었다. 한산도와 고금도를 중심으로 군사·산업·행정 기능이 결합된 운영체계를 이순신의 규율성과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순신 개인의 엄격함만이 아니다. 사람과 자원이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의 질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랑캐 리더의 규율성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외부에서 주어진 질서에는 쉽게 굴복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만든 내부의 규칙은 철저하게 지킨다. 그런 까닭에 오랑캐 정신에서 야생성과 규율성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완성한다.
야생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면, 규율성은 그 가능성을 지속 가능한 힘으로 바꾼다. 이순신 역시 개인의 용맹이 아니라 조직된 힘으로 전쟁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규율성을 보여준다.
개방성 - 나에게 없는 힘을 밖에서 받아들이다
작은 조직은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강한 상대와 오래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랑캐 리더에게 필요한 세 번째 정신이 개방성이다.
오랑캐연구소가 말하는 개방성은 단순한 관용이나 포용이 아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사람과 능력을 외부에서 받아들여 자신의 새로운 힘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이순신이 피난민과 어민, 여러 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역량을 활용하고, 정유재란기에는 명나라 수군과의 관계 역시 전쟁 수행에 활용했다는 점이 개방성과 연결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다.
출신이 어디인가?
신분이 무엇인가?
나와 같은 사람인가?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사람이 지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조직의 힘으로 전환한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자신들에게 부족한 한족과 몽골의 인재와 기술을 활용했던 것처럼, 이순신 역시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사람과 역량을 활용했다. 이것이 오랑캐 리더가 가진 개방성이다.
실용성 - 부족한 자원을 스스로 만들어내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의 이순신과 오랑캐 정신이 가장 강하게 만나는 지점은 실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성이란 명분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명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에 실제적인 답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전쟁은 이상만으로 수행할 수 없다. 군사가 있으면 먹여야 한다. 배가 있으면 수리해야 한다. 무기가 필요하면 만들어야 한다. 그 모든 일을 계속하려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이순신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둔전과 어로, 제염 등을 통해 군량과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한 것은 그의 실용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이순신은 단순한 해전의 명장을 넘어선다. 그는 싸우는 조직을 운영하려면 그 조직을 먹여 살리는 시스템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 리더였다.
전쟁을 지속하려면 경제가 필요하다. 경제를 움직이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조직과 규율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야 군사력이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이순신의 진정한 실용성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껴 쓴 데 있지 않다. 없던 자원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시 조직의 힘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전략성 - 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만들다
마지막 정신은 전략성이다. 오랑캐 리더의 전략성은 단순히 머리가 좋거나 전술에 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과 상대의 강약장단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싸우는 능력이다.
약자가 강자가 만들어놓은 방식으로 싸우면 이기기 어렵다. 따라서 오랑캐 리더는 싸움의 판부터 바꾸려고 한다.
이순신 역시 무모한 영웅주의보다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조건을 만드는 데 집중한 리더다. 적과 자신의 조건을 파악하고 지형과 조류, 함선과 화포 등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를 종합해 싸움을 설계했다.
이 점에서 오랑캐연구소가 강조해 온 “실패하는 리더는 오랑캐 리더가 아니다” 라는 명제의 의미도 분명해진다.
이 말은 리더라면 무조건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패가 조직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리더는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강점을 분석하며,
싸울 장소와 시기를 선택하고,
필요하면 기다리고,
싸워야 할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 만든다.
따라서 전략적인 오랑캐 리더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무모함을 가장 경계하는 리더다. 이순신의 전략성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순신의 진정한 힘 - 다섯 가지 정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다
그러나 이순신을 오랑캐 리더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에게 다섯 가지 특징이 하나씩 발견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정신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문제 해결 시스템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야생성으로 불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규율성으로 흩어진 사람과 자원을 조직했다.
개방성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을 받아들였다.
실용성으로 필요한 자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전략성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승리의 조건을 만들었다.
장한식 저자의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이순신의 수국 운영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전 → 결집 → 확장 → 성과 → 지속
이 구조는 우리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살펴보면서 정리해 온 오랑캐 정신의 작동 방식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순신의 경우 한 가지가 더 중요하다. 그 모든 힘이 하나의 명확한 목적을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고, 백성을 지키고, 국가를 지키는 것이었다.
누르하치·홍타이지와 이순신은 무엇이 다른가
이 지점에서 이순신과 누르하치·홍타이지의 차이도 분명해진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기존의 국제질서에 도전한 창업자이자 정복자였다.
반면 이순신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군사력과 경제적 기반을 개인의 정치적 권력으로 전환하려 하지도 않았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는 데 그 힘을 사용했다면, 이순신은 백성과 국가의 보존을 위해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을 사용했다.
따라서 세 사람의 오랑캐 리더십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누르하치는 ‘창업형 오랑캐 리더’였다. 없는 곳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냈다. 홍타이지는 ‘확장형 오랑캐 리더’였다. 아버지가 만든 국가를 더 큰 제국의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수호형 오랑캐 리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무너져가는 국가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맡은 영역의 조직을 지키고,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위기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목적은 달랐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조건 자체를 바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순신은 오랑캐 리더십을 ‘정복자의 리더십’에서 ‘문제 해결의 리더십’으로 확장한다
이순신의 사례가 오랑캐연구소에 특별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오랑캐 리더가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같은 북방의 정복자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라면, 오랑캐 정신은 특정 민족과 특정 시대의 역사적 수준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도 같은 다섯 가지 정신이 작동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면 오랑캐 정신의 의미는 크게 확장된다. 오랑캐 리더의 본질이 정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새로운 제국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생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영토를 정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했던 전쟁의 조건을 바꾸려고 했다.
부족한 자원을 탓하지 않고 만들어냈다. 사람을 조직했고, 필요한 역량을 받아들였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순신은 오랑캐 정신을 ‘제국을 만드는 리더십’에서 ‘위기를 돌파하고 조직을 살리는 리더십’으로 확장시키는 인물이 된다.
이순신은 오랑캐 리더의 전형이 될 수 있는가?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순신이 오랑캐 리더의 전형이 될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말하는 ‘오랑캐 리더’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때 그렇다. 이순신은 역사적 의미의 오랑캐가 아니다. 누르하치나 홍타이지처럼 새로운 국가를 세운 정복자도 아니다.
그러나 오랑캐 리더를 불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찾아내며, 부족한 자원을 조직하고 외부의 힘을 받아들여, 현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끝까지 목표를 추구하는 리더라고 정의한다면 이순신은 그 전형이 될 수 있다.
그에게는 야생성이 있었다. -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생존의 길을 찾았다.
그에게는 규율성이 있었다. - 혼란 속에서도 사람과 조직을 하나의 목적 아래 움직이게 했다.
그에게는 개방성이 있었다. - 필요한 사람과 능력을 받아들여 조직의 힘으로 만들었다.
그에게는 실용성이 있었다. -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생산 기반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는 전략성이 있었다. - 자신과 상대의 조건을 분석하고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싸움을 설계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를 넘어 이순신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오랑캐 리더의 특징은 이것이다.
그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주어진 조건 자체를 바꾸었다.
자원이 부족하면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냈다.
사람이 흩어지면 조직했다.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웠다.
자신에게 불리한 싸움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했다.
이것이 오랑캐 리더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순신을 오랑캐 리더라고 부르는 데서 중요한 것은 ‘오랑캐’라는 단어가 주는 파격성이 아니다. 성웅이라는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현실적인 문제 해결자 이순신, 시스템을 구축한 이순신, 불리한 조건을 유리한 조건으로 바꾸어낸 이순신을 다시 발견하는 데 의미가 있다.
누르하치가 국가를 창업한 오랑캐 리더라면, 홍타이지는 그 국가를 제국으로 확장한 오랑캐 리더이고, 이순신은 위기에 빠진 조직을 살리고 다시 세운 오랑캐 리더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다.
“현실을 탓하지 않았다. 현실을 바꾸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은 충분히 오랑캐 리더의 또 하나의 전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순신은 오랑캐연구소가 말하는 오랑캐 리더십이 특정 시대와 민족, 정복자의 이야기를 넘어 창업하고, 성장시키고, 위기를 돌파하고, 무너진 조직을 다시 세우는 보편적인 문제 해결형 리더십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오랑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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